강남아파트에 해당하는 글 1

강남개발의 배경과 역사

부동산정보|2019. 11. 5. 08:26

 

강남개발의 필요성 

1960년대부터 서울로 전국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강북만으로는 그 인구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강남개발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미 강북지역의 택지들은 다 개발되었고, 산과 같이 사람이 살 수 없을것 같은 곳들도 판자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해당 시기는 박정희정권시기였고 남북대치가 심한 시기에서 언제 전쟁이 또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강북에 대부분의 인구와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었지요. 

 

강남은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의 크기 변화

강남은 사실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1963년에 되어서야 강남은 서울에 편입되었지만 미개발 상태로 오랫동안 놓여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한남대교 건설이 완료되면서부터 60년대 말부터 정부중심으로 대형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강남 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개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강남개발은 1969년 구획정리사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용지가 확보되었지만 1970년대 초에 세계적인 불황이 있어 실제로 1970년대까지 개발이 크게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주거 분산도 부진했습니다. 

 

 

강남개발과 정치 자금 이야기

 이 당시에 정부에서는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토지 투기행각까지 벌였습니다. 정부는 해당 지역을 구획정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유지였던 토지들을 묶어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 국장이었던 윤진우는 1970년에 총 25만 평의 땅을 평당 5100원에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딱 1년 후 1971년 5월에 18만평을 평당 1만 6천원에 팔았습니다. 1년만에 20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부동산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이나, 영화에서도 다루어지기도 했었지요. 

공유수면 매립과 강남개발

 

강남에서 아파트단지가 건설된 것은 공유수면을 매립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 반포,흑석, 압구정동, 구의동, 잠실 모두 과거에는 한강변의 수면지였습니다. 과거 지금의 잠실은 소유자들의 토지규모가 작았고 많은 사람들이 작은 땅을 조금씩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택지개발지구를 확보하여 개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공유수면을 매립하면 거대한 택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설 재벌들이 생긴것도 이때였습니다. 국유 하천에 제방을 쌓고 하천부지를 택지로 조성하였습니다. 건설 비수기때마다 해당 지역에 모래를 부어서 택지를 조성하면 택지가 됩니다. 이 택지는 정부기관에서 일괄 매수해가거나 건설회사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됩니다. 손해보지 않는 정말 엄청난 이권사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이익집단이들이 달려들었습니다.

 

본격적인 강남개발

다리건설

강남개발사업이 도시개발으로서 제대로 추진되었던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영동지구와 잠실지구의 토지구획정리가 진척되었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1972년에는 잠실대교, 1973년에는 영동대교, 1976년에는 잠수교와 천호대교, 1979년에는 성수대교가 만들어지면서 강남과 강북과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제혜택

또한 정부는 1973부터 강남을 개발촉진지구라면서 엄청난 세제혜택을 줍니다. 부동산 매매에 관해서도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도시계획세, 면허세등을 모두 면제해줍니다. 사실상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것과 다름없습니다. 1976년에는 잠실도 같은 세제혜택을 적용하여 개발시킵니다.

 

아파트지구선정

게다가 아파트지구라는것까지 지정합니다. 당시에는 조그마한 지주들이 자신의 땅에 아파트가 들어오는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땅을 아파트지구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아파트 외에는 다른 것을 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아파트는 더 많이 건설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전체주의 시대에 일반 개인의 권리들을 무시하고 건설업자와 정부가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지하철,학교,터미널,공공기관 이전

정부는 강남을 개발하기 위해서 각종 인프라를 강남으로 이전시킵니다. 그중에서 첫번째로 명문 고등학교를 강제로 강남으로 이전시킵니다. 지금은 강남 8학군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경기고, 휘문고, 정신여고, 서울고와 같은 명문학교를 옮기자 자식들의 교육을 위한 고소득층들이 이 근처로 이사하게 됩니다. 또한 정부 인프라로서는 검찰청, 관세청, 대법원을 서초 일대 강남권으로 이전시켰고, 반포 주변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큰 고속버스터미널을 짓게 됩니다. 그리고 지하철 2호선을 강남쪽으로 틀어서 계획 변경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서 1970년과 80년을 거쳐서 강남지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지역으로 변모합니다. 1970~80년 사이 서울 전체 건설 물량의 58%가 강남에서 건설됩니다. 1995년 기준으로 서대문지역은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는 10%미만이었던 반면에 강남지역은 57%가 아파트의 비율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강남개발은 아파트 공화국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시기였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역사를 바꾼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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